비트코인에 대한 미국 국세청(IRS)의 첫 시선
2009년 첫 등장 이후 비트코인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탈중앙 금융 자산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습니다. 초기에는 일부 개발자들과 이상주의자들 사이에서만 통용되었지만, 2013년을 기점으로 암호자산의 대중적 관심이 폭발하면서 미국 정부와 국세청(IRS)도 비트코인에 주목하게 됩니다.
특히 비트코인을 통한 자금세탁, 탈세 우려가 커지며,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반(FinCEN)은 비트코인을 “가상통화(Virtual Currency)”로 규정하고, 그 취급업체에 대해 금융서비스사업자(MSB)로 등록하고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이와 함께 IRS는 비트코인을 기존 세법에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 판단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IRS Notice 2014-21: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닌 ‘재산’
2014년 3월, IRS는 공식적으로 Notice 2014-21을 통해 비트코인을 “재산(Property)”으로 간주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만약 비트코인이 ‘통화’로 분류되었다면, 외환거래처럼 환차익 일부는 과세 면제 대상이 될 수 있었겠지만, ‘재산’으로 분류됨으로써 주식, 부동산처럼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이 부과되는 자산으로 취급된 것입니다.
즉, 비트코인을 팔거나 다른 자산으로 교환하거나, 물건 구매에 사용하는 모든 행위가 ‘양도’로 간주되어 과세 대상이 됩니다.
이와 함께 IRS는 암호화폐 거래 시 발생하는 이득을 자본이득(capital gains) 또는 일반 소득으로 분류하여 납세자가 구분해 신고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과세의 기초 원리: 어떤 경우에 세금이 발생하는가?
비트코인에 대한 과세는 단순히 “보유”한다고 발생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세금은 ‘처분’이 발생할 때 과세 이벤트(event)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 비트코인을 매도하여 현금화
- 다른 암호화폐로 교환
- 비트코인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
- 증여나 기부 등의 행위
반면, 단순히 비트코인을 보유 중이거나 가격이 상승했더라도, 이를 실현하지 않았다면(즉, 팔지 않았다면) 과세되지 않습니다. 이는 이른바 ‘미실현이익(unrealized gains)’에는 과세하지 않는 현재 세법의 기본 원칙을 따릅니다.
손익 계산의 복잡성
IRS의 과세 기준이 명확하더라도, 비트코인을 실제로 거래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복잡한 세무 계산이 필요합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여러 거래소와 지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 소액 거래가 빈번하며
- 비트코인마다 원가(구매가)를 추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IRS는 ‘개별 식별법(Specific Identification)’ 또는 ‘선입선출법(FIFO)’을 허용하며, 이에 따라 손익을 계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부 거래소들은 연말에 Form 1099-B를 통해 거래 내역을 보고하기도 하며, 투자자들은 CoinTracker, Koinly 같은 암호화폐 회계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세무 자료를 준비합니다.
왜 ‘재산’ 분류가 중요한가?
IRS가 비트코인을 ‘재산’으로 분류한 결정은 단순한 행정 조치 이상입니다. 이는 향후 암호자산 전체에 대한 과세 체계의 기준점이 되었고, 향후 발생할 다양한 암호화폐 과세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법리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NFT, DeFi, 에어드랍, 스테이킹 수익 등 다양한 암호자산 활용 방식이 등장하면서, IRS는 “재산” 개념을 기반으로 한 일관된 해석 체계를 확립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단순한 과세의 문제가 아니라, 암호자산을 제도권으로 통합하는 방향성의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세금 보고의무 강화: Form 1040과 의도된 압박
IRS는 2019년부터 납세자의 암호화폐 보유 및 거래 여부를 명확히 파악하고자 Form 1040의 첫 페이지에 “가상통화를 취득, 판매, 송금, 교환 또는 기타 방식으로 사용했는가?”라는 질문 항목을 삽입했습니다.
이 항목은 단순한 체크박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허위 기재 시 형사 처벌이 가능한 ‘위증죄(perjury)’에 해당하는 강력한 법적 장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미국 세법에서 납세자의 진술은 고의성이 입증될 경우 최대 5년의 징역 또는 수천 달러의 벌금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IRS는 이러한 규정을 통해 암호화폐 탈세에 대한 억지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디지털 추적의 시대: IRS와 블록체인 분석기술
IRS는 단순한 신고 의무 강화에 그치지 않고, 블록체인 분석업체인 Chainalysis 및 Palantir와의 협업을 통해 실제 추적 기술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2017년 Coinbase 거래소에 대한 소환장 발부입니다. 당시 IRS는 약 1,400만 명의 사용자 정보 중, 과세 누락이 의심되는 약 1만 3천 건의 기록을 요청하였고, 결국 수천 건의 미신고 거래를 적발했습니다.
탈중앙성의 상징이던 암호화폐 시장조차, 현실에서는 정부 기관에 의해 추적되고 있는 것입니다. 거래의 익명성은 점차 환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현실적 단속과 처벌 사례
IRS는 단속 사례를 실제로 보여줌으로써 납세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0년에는 암호화폐 거래로 수익을 얻고도 이를 신고하지 않은 고소득 납세자들을 대상으로 “Letter 6173”, “Letter 6174-A” 등을 통해 세무조사를 개시했습니다.
실제로 2021년 기준, 암호화폐로 수익을 얻고도 신고하지 않은 사례가 수천 건에 이르렀으며, 일부는 수십만 달러의 벌금 및 이자를 부과받았습니다.
또한 IRS는 납세자에게 거래 내역, 입출금 지갑 주소, 거래소 계정 상세정보 등 디지털 정보 일체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며, 이를 통해 탈세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거래소와 보고의무 확대
IRS는 개인 납세자뿐 아니라 거래소에 대해서도 책임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1년 인프라 법안(Infra Bill)의 통과로 인해, 암호화폐 브로커로 분류된 거래소는 Form 1099-B를 통해 연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거래소는 고객들의 실명정보(KYC)를 확보하고, 각 거래의 시점, 수량, 가격, 손익 내역 등을 정확히 보고해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DeFi 플랫폼, NFT 마켓, 탈중앙형 거래소(DEX)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모호하여, 과세 형평성과 관련된 논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탈중앙화는 기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제도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IRS는 모든 형태의 디지털 자산 흐름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는 의지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입법 동향: 규제 명확화를 향한 움직임
암호화폐가 제도권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적 지위의 명확화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미국 의회에서는 다양한 법안들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2023년 발의된 디지털 자산 명확화 법안(Digital Asset Market Structure Bill)이 있습니다.
해당 법안은 암호화폐를 증권(SEC 관할) 또는 상품(CFTC 관할)으로 명확히 구분하여, 기관 간 규제 충돌을 방지하고 투자자 보호 체계를 정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세제 측면에서도, 이러한 분류는 세율, 신고 시점, 공제 범위 등 실질적인 납세의무에 영향을 미칩니다.
주(州) 단위 과세정책의 다양성
연방 단위의 규제 외에도 미국은 주(州) 정부마다 서로 다른 과세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뉴욕주는 BitLicense 제도를 통해 암호화폐 사업자를 엄격히 규제하며, 관련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반면 와이오밍, 플로리다 등은 친암호화폐 정책을 통해 디지털 자산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죠.
이러한 차이는 동일한 암호화폐 거래라 하더라도 ‘거주지’에 따라 세부 규정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세무 리스크를 사전에 인지하고, 자신이 속한 주의 법령을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CBDC의 등장과 과세의 재편 가능성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현재 디지털 달러(CBDC)의 발행 가능성을 적극 검토 중입니다. 만약 도입된다면, 암호화폐와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며 세제 정책에도 구조적 변화가 예상됩니다.
디지털 달러는 실시간 과세자료 제공이 가능하며, 탈세 방지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IRS에 매우 매력적인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프라이버시 침해와 중앙집중화에 대한 논란도 커질 것입니다.
CBDC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미국 세무당국이 암호화폐 생태계를 어떻게 통제할지를 결정짓는 핵심 열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향후 과세 정책 전망과 투자자 대응 전략
IRS는 앞으로도 과세 범위를 넓혀 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트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DeFi 수익의 소득화: 예치 이자, 유동성 제공 보상 등이 일반 소득으로 과세
- NFT 예술품과 로열티 수익: 저작권 수익에 준하는 소득으로 처리
- 미실현 이익 과세 논의: 자산을 팔지 않아도 세금이 부과되는 모델 논의 중
투자자는 단순히 수익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과세 리스크를 고려한 포트폴리오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전문가와의 상담, 거래소의 세금보고서 활용, 자동화된 회계 소프트웨어 도입 등을 적극 고려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비트코인 과세는 단순한 신고를 넘어, 세금에 대한 전략적 설계가 요구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