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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각 섹션은 실제 국가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최신 규제 경향을 종합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암호화폐 규제의 출발점과 전제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는 기술 혁신의 결과물로 태동했지만, 동시에 기존 금융 규범에 도전하는 존재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유로운 혁신과 탈중앙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금세탁, 탈세, 불법자금 흐름, 소비자 피해 등 현실적 문제들이 불거졌고, 그에 따라 “규제의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각국이 처한 정치·경제 상황과 금융시장의 성숙도, 통화제도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암호화폐에 대한 접근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어떤 나라는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어떤 나라는 화폐로, 또 어떤 나라는 불법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규제의 출발점은 다양하지만, 오늘날 대부분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제도권 내 편입을 통해 암호화폐를 통제 가능하고 투명한 영역으로 끌어오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규제 분산과 입법 논의의 병행
미국은 전 세계 암호화폐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이며, 그만큼 다양한 규제기관이 암호화폐를 서로 다른 시각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국세청(IRS),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증권거래위원회(SEC), 재무부 산하 FinCEN이 각기 다른 관점과 기준을 가지고 감독을 수행합니다.
CFTC는 비트코인을 “상품(Commodity)”으로 보고 파생상품 시장에서 감독 권한을 행사하며, IRS는 “재산(Property)”으로 분류하여 자본이득세 과세 대상으로 봅니다. FinCEN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금융서비스업자(MSB)로 분류해 자금세탁방지(AML) 및 고객확인(KYC)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주 단위 규제도 상이합니다. 예컨대 뉴욕주는 BitLicense 제도를 도입해 엄격한 인가 요건을 요구하고 있으며, 반면 와이오밍주는 암호화폐 친화적 법안을 지속적으로 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잡성을 해소하기 위해 최근에는 연방의회에서 “암호자산을 증권과 상품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관할을 정하는 법률”이 발의되어 논의 중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2024년 상정된 “FIT for 21st Century Act”로, 미국 규제 프레임워크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입법입니다.
유럽연합: MiCA 규정으로 체계적 제도화
유럽연합은 암호화폐에 대한 통합적 대응을 위해 2023년 MiCA(Market in Crypto-Assets) 규정을 통과시켰으며, 2024~202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됩니다. 이는 암호화폐 산업 전반에 단일 규제 틀을 적용하려는 최초의 국제적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MiCA는 암호화폐 서비스 제공자(VASP)에 대해 인가제, 자본요건, 투자자 보호, 백서 공시 등을 의무화합니다. 또한,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KYC 및 트래블룰 도입도 포함되어 있어, 기존 금융권과 유사한 규제를 가상자산 업계에 적용하는 구조로 설계됐습니다.
비트코인의 법적 지위 측면에서는 2015년 EU 사법재판소가 “비트코인 거래는 부가가치세 면제 대상”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일정 부분 ‘화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각 회원국 자율로 정하고 있어 독일, 프랑스, 스페인 간의 규제는 상이합니다.
일본: 제도 기반의 우호적 환경 조성
일본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는 아니지만 결제수단으로 합법화한 세계 최초의 국가 중 하나입니다. 2017년 금융청 주도로 가상통화 교환업자 등록제를 시행하였고, 이후 대규모 해킹 사건을 계기로 거래소의 보안 요건과 내부관리 기준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거래소는 반드시 고객자산을 회사자산과 분리 보관하고, 외부 회계감사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또한 AML/KYC를 포함한 고객확인 의무도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 덕분에 일본은 비교적 친암호화폐 환경을 유지하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의 일본 진출도 활발합니다.
일본의 규제 접근은 “전면 금지”가 아닌 “제도적 수용”을 통해 소비자 보호와 산업 육성을 동시에 도모하는 균형 전략으로 평가받습니다.
중국: 전면 금지와 CBDC 전략의 병행
중국은 암호화폐에 대해 가장 강력한 규제 조치를 시행한 국가 중 하나입니다. 2017년 ICO를 전면 금지하고, 이어 암호화폐 거래소도 폐쇄 조치한 바 있습니다. 2021년 9월에는 인민은행이 암호화폐와 관련된 모든 거래를 불법행위로 규정하면서 사실상 완전 금지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법정 화폐와의 환전, 결제, 거래가 전면 금지되어 실질적으로 유통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채굴 역시 금지되어 한때 세계 해시파워의 60% 이상을 점유하던 중국 내 채굴 산업이 급속도로 해외로 이전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암호화폐를 규제하는 동시에, 디지털 위안(CBDC)을 앞세워 자국 중심의 디지털 화폐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한국: 신고제와 과세 기반의 점진적 제도화
한국은 암호화폐에 대해 금지보다는 제도화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거래 자체는 합법입니다. 다만, ICO는 법적 근거가 없어 실질적으로 금지된 상태이며, 증권형 토큰(STO)과 비증권형 가상자산을 구분하는 법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2021년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으로 거래소에 대한 신고제 및 트래블룰이 도입되었고,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도 금융회사 수준으로 강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 거래소는 실명 계좌, 보안 인증, 이용자 보호 조치 등을 갖추고 금융위원회에 신고·수리 절차를 완료해야 영업이 가능합니다.
과세 측면에서는 2025년부터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자산 거래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20% 양도소득세를 부과할 예정입니다. 과세 이슈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향후 거래 투명성과 제도 수용성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타 국가들: 실험과 혼란, 그리고 수용의 혼재
각국의 접근 방식은 제도 성숙도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엘살바도르는 2021년 비트코인을 세계 최초로 법정통화로 지정하였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도 이와 유사한 선언을 했지만 기술적 기반 부족으로 실제 실행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인도는 2022년부터 암호자산 이익에 대해 30%의 고정세율로 과세하는 정책을 도입했으나, 암호화폐 자체에 대한 법률은 미비한 상태입니다. 러시아는 암호화폐 결제를 금지한 상태에서 채굴 관련 입법 논의를 진행 중이며, 터키는 결제금지령을 내렸습니다.
반면, 스위스, 싱가포르 등 금융 중심국가는 암호화폐 산업을 제도권으로 수용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으며, 라이선스 기반의 규제 체계를 통해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FATF 지침과 글로벌 규제 정합성의 강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2019년부터 가상자산 서비스제공자(VASP)에게 전통 금융권 수준의 AML/KYC 요건을 적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이 바로 “트래블룰(Travel Rule)”이며, 이는 일정 금액 이상의 암호화폐를 전송할 때 송신인과 수신인의 정보를 함께 전송하는 원칙입니다.
현재 미국, EU,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주요국은 이 지침을 자국법에 반영해 시행 중이며, 이를 위한 국제 표준인 IVMS101 데이터 형식도 개발되었습니다. 거래소 간 송금 시 자동으로 정보를 연동하기 위한 기술적 솔루션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규제 체계 형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FATF의 트래블룰 도입은 탈중앙 기반의 기술에 중앙집중적 규범을 접목시키는 시도라는 점에서, 암호화폐 산업의 중요한 분기점이라 평가됩니다.
전 세계 규제 흐름의 수렴과 공통 프레임워크 형성
암호화폐가 주류 금융 시스템과 맞닿으면서 대부분의 국가는 제도권 편입이라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방치 또는 실험의 영역에 머물렀던 암호화폐가 이제는 거래소 인가제, 고객 확인(KYC), 자금세탁방지(AML) 의무 등 전통 금융 규제의 틀 안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죠.
특히 FATF 트래블룰과 KYC 요건은 거의 모든 규제국가에서 기본 전제가 되었으며, 이를 미비한 나라는 국제 금융 네트워크로부터의 배제 리스크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동시에 암호화폐 과세 체계도 정비되고 있습니다. 미국, 한국,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양도소득세 중심의 과세 프레임을 구축하거나 도입을 앞두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세율, 보유 기간, 면세 요건 등을 세부적으로 조정해 나가고 있습니다.
CBDC와 암호화폐 규제의 연결고리
최근 가장 주목받는 흐름 중 하나는 각국 중앙은행의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추진과 암호화폐 규제의 병행입니다. 이는 단순한 금융 기술 혁신이 아니라, 통화 주권과 금융 안정성 확보라는 정책 목표와 맞닿아 있습니다.
CBDC는 법적 효력을 지닌 디지털 현금으로,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고 통제합니다. 반면, 비트코인은 탈중앙화된 시스템에 기반하며 통제 주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정부 입장에서는 ‘위협’이자 동시에 ‘대안’으로 작용합니다.
중국은 암호화폐 전면 금지와 동시에 디지털 위안화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유럽중앙은행(ECB), 미국 연준(Fed), 한국은행 등도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 법정화폐 구현을 시험 중입니다.
CBDC는 규제 강화의 논리와 기술적 기반을 제공하며, 탈중앙형 암호화폐에 대한 견제 장치로도 작동합니다.
국제기구의 입장과 글로벌 조율 시도
암호화폐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IMF, BIS, OECD, FATF 등 국제기구들의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IMF는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법정통화 선언에 대해 거시경제 안정성 훼손 우려를 제기하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BIS는 중앙은행들의 CBDC 도입을 위한 기술 백서를 공동 발간하고, 글로벌 결제 시스템의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려는 “디지털 화폐 간 연계성” 논의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규제 측면에서 국가 간 제도 격차를 줄이고, 기술표준과 감독기준을 통일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래 전망: 규제와 탈중앙의 공존을 위한 과제
향후 암호화폐 규제는 단일한 방향으로의 수렴이 아니라, 탈중앙 기술의 특성과 기존 법제의 충돌을 조율하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할 것입니다. 예컨대, 개인지갑 간 거래나 디파이(DeFi) 영역은 여전히 규제 사각지대로 남아 있으며, 익명성과 프라이버시 이슈는 각국 입장 차가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가들은 암호화폐를 전면 금지하기보다는 제도권 내 통합과 기술 수용을 중심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이는 블록체인 기술이 금융, 보안, 데이터 관리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며, 경제적·사회적 효용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향후 핵심 과제는 “혁신의 유연성”과 “시장 안정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규제 설계이며, 이는 암호화폐 시장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핵심이 될 것입니다.